네타냐후의 전쟁 광기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 민간인 희생 앞에서 국제법은 왜 무너지고 있는가

2026. 4. 13. 19:46중동_Middle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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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는 언제나 명분이 따라붙습니다. 안보, 자위, 보복, 억지력, 테러 척결 같은 말들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국가가 자신의 안보를 말하더라도, 그 전쟁이 끝없이 민간인의 생명 위에 세워지고 있다면 우리는 멈춰 서서 물어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 방식은 과연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나는 이 글에서 특정 민족 전체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어떤 민족도 집단적으로 악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역사적 비극은 또 다른 증오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 국가의 정부, 그 정부의 지도자, 그리고 그 지도자가 선택한 군사적 방식은 분명히 비판받을 수 있다. 지금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 아니라, 네타냐후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전쟁의 방식과 그로 인한 참혹한 결과다. 

 

가자에서의 참상은 이미 너무 오래 계속되고 있다. Reuters는 2026년 4월 보도에서, 이스라엘의 2년에 걸친 군사 작전으로 7만 2천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으며, 가자 보건당국은 그 다수가 민간인이라고 집계했다고 전했다. 같은 보도는 기근의 확산, 대부분 건물의 파괴, 그리고 주민 대다수의 반복적인 강제 이동까지 함께 지적했다. 이런 현실을 ‘부수적 피해’라는 말로 덮으려는 시도는 잔혹한 궤변에 가깝다. 네타냐후 정부가 보여준 전쟁 수행 방식은 인간성과 국제법의 최소한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레바논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유엔 인권최고대표 볼커 튀르크는 2026년 4월 8일, 이스라엘의 대규모 레바논 공습에 대해 “학살과 파괴의 규모가 충격적”이라고 비판하며, 민간인과 민간 인프라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고 모든 위반 의혹은 신속하고 독립적으로 조사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레바논 민방위 당국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전국에서 25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국제사회가 듣게 되는 것은 군사적 성공의 언어가 아니라, 병원과 구급차, 주거지가 무너졌다는 처참한 보고뿐이다. 네타냐후는 언제까지 자신의 광기 어린 전쟁으로 세상을 불안과 공포 속에 몰아넣으려 하는가.

 

레바논의 현실은 더 이상 ‘국지전’이라는 말로 감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Reuters는 2026년 4월 13일, 이스라엘 군이 남부 레바논 도시 빈트즈바일에서 수일 내 완전한 작전 통제를 확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단순한 보복 공격이 아니라, 남부 레바논을 사실상 군사적으로 장악하려는 흐름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마주한 것은 군사적 정밀함의 증거가 아니라 민간인 피해의 참혹한 기록이었다. Reuters는 4월 8일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레바논 전역에서 254명이 숨졌고, 병원과 구급차까지 타격됐다고 전했다. AP 역시 베이루트와 주거 밀집 지역 공습으로 18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안보’와 ‘자위’라는 말만 반복하는 것은 설득이 아니라 책임 회피에 가깝다. 민간인의 생명과 삶터가 무너지는 전쟁을 계속 정당화하려는 태도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지금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국가가 가진 압도적인 군사력은 그만큼 더 큰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자위권은 국제법상 인정될 수 있지만, 그것이 무제한적인 폭력의 허가증이 될 수는 없다. 민간인 보호, 비례성, 구별의 원칙은 전쟁 중에도 결코 무시될 수 없다. 그런데 가자와 레바논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바로 그 최소한의 원칙들마저 사실상 붕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 보고서는 가자와 점령지에서의 불법적 무력 사용, 조직적인 주거지 파괴, 인도주의 지원의 차단, 영구적인 인구구성 변화를 겨냥한 듯한 정황까지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안보’라는 단어만 되풀이하는 것은 책임 있는 설명이 아니라, 참혹한 현실을 덮고 민간인 희생을 정당화하려는 폭력의 언어에 가깝다.

 

국제형사재판소의 흐름도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Reuters에 따르면 ICC 판사들은 2025년 7월, 네타냐후 총리와 전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에 대한 체포영장을 철회해 달라는 이스라엘의 요청을 기각했다. 영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법원의 관할권 문제는 별도로 계속 다투어지고 있다. 물론 영장 자체가 곧 유죄 확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전쟁 수행 방식이 국제법의 차원에서조차 심각한 법적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네타냐후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그의 부패 재판은 2020년 시작된 뒤 여러 차례 지연돼 왔고, Reuters에 따르면 그는 2026년 4월 재개를 앞두고서도 다시 연기를 요청했다. 이런 모습은 국가적 위기와 전쟁을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한 방패로 삼고 있다는 의심을 더욱 키운다. 그는 이제 평화를 선택할 수 없는 지도자가 아니라, 전쟁 없이는 자신의 권력을 지탱할 수 없게 된 지도자처럼 보인다.

 

나는 여기서 역사적 비유를 남용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피해의 기억을 가진 사회라고 해서 언제나 정의로운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의 고통은 오늘의 면죄부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소중하다면, 바로 그 기억 때문에라도 오늘의 민간인 학살과 집단적 처벌, 굶주림과 파괴에 더 엄격해야 한다.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는 가장 올바른 방식은, 다른 이름의 비극이 현재진행형이 되는 순간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네타냐후 정부의 광기 어린 전쟁은 이미 너무 멀리 갔다. 그것이 안보의 이름으로 불리든, 보복의 이름으로 불리든, 민간인의 피와 폐허 위에 세워진 전쟁이라면 세계는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한 편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다시 전쟁보다 앞에 두는 일이다. 그 원칙을 잃는 순간, 우리는 모두 패배한다. 그렇다면 이제 누가 네타냐후를 멈출 것인가. 스스로를 무한한 권력의 주인처럼 여기는 자의 목에, 과연 누가 방울을 달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의 존엄이 전쟁보다 앞서야 한다고 믿으며
– Nomadia83

 

 

#전쟁과평화 #국제정치 #시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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